' 국정감사 ' 에 대한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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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국회에서 기자로, 박용규
보좌진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는 바로 기자입니다. 정치부 기자는 국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구성원 중의 하나인데요. 기자 출신이 국회에 보좌진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국회 보좌진을 하다가 정치부 기자로 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여기 그 흔치 않은 경험을 한 분을 모셨습니다. 정치부 기자에서 머니투데이 더300의 국감스코어보드를 만들 때 있었던 이야기까지, 재미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인터뷰해주신 박용규님께서는 '보좌진의 정무 감각 기르기'를 주제로 매월 글을 기고해주실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국회 보좌진이 된 계기 "정치의 선한 영향력을 국회에서 입법으로 풀어보자"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 전공으로 정치학을 택한 이유는 학문적인 관심도 컸지만 정치가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정치가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석사를 하다가 취업 시기를 놓치고, 29살에 군대를 갔다 왔더니 더 늦어져서 박사까지 하니까 33살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일반 기업 취직을 하기엔 늦은 나이인데다가 준비도 안 되어 있었고, 당시 필요한 스펙도 없었습니다. 영어, 해외연수, 인턴십 같은 것 등이 전무했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정치학을 선택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기자등이 있었는데 여러 선배들의 권유도 있었고, 스스로도 내가 생각한 정치의 선한 영향력을 국회에서 입법으로 풀어보자고 생각하고 국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국회 보좌진을 하면서 기억 나는 일 "더 좋은 세상을 향한 도전 의식은 있어야 보좌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며 보좌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정도의 소명의식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세상을 향한 도전 의식은 있어야 보좌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그러한 마음으로 2010년부터 국회에 있다가 기자생활도 했고 다시 국회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법을 만들 때도 입법이라는 것이 제도개선이 필요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입법은 세상에 아젠다를 던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길을 닦는 것이 입법인 것이죠. 그래서 법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한 200개 정도 법안을 발의 했는데요. 굵직한 입법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몇 가지만 이야기를 해본다면, 이전에는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증인을 출석시키려 한다면 증인 출석 요구서를 직접 갖다 줘야했는데요. 증인이 문을 안 열고 요구서를 안 받으면 국회에 출석을 안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사람이 우병우였습니다. 국회 출석 요구서를 안 받고 출석을 피하고 있어서 고민을 하던 차에 민법에 있는 공시송달(공시하면 수신한 것으로 간주)을 떠올렸습니다. 국회법의 증인 출석 요청도 공시송달로 바꿔버렸고 운영위에서 6개월만에 통과되었습니다. 이제는 증인이 고의로 출석요구서를 받지 않아도 출석요구서를 공시한다면 증인 출석 대상자는 국회에 출석을 해야 합니다. 이후 국회 홈페이지에도 공시송달 탭도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이 일로 국회의 한 역사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인터넷전문은행특별법을 통해 인터넷 은행 설립 해법을 제시한 적도 있고, 대기업 집단을 지정하는 기준이 담긴 시행령을 법제화하기도 했습니다. 또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두 번 쓴 것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 1만4,000자 길이로 두 번 정도 쓰고 나니까 국회에서 글쓰기가 더 이상 무섭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기자로 간 계기와 활동 "기자를 하고 국회에 복귀하니까 몸 값이 확 올라갔던 것입니다." 기자는 내가 만일 다른 직업을 한다면 무엇을 할까 했던 직업이었습니다. 2018년에 모셨던 의원님이 공천을 못 받아서 공공기관에 잠시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국회로 돌아 왔는데 재미가 없었습니다. 마침 머니투데이가 더300을 만들면서 경력 특채로 보좌진 출신, 당직자 출신을 뽑으려 하더라고요. 그 때 재미있겠다 하고 언론사로 갔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정치부 기자로 일을 했습니다. 기자란 직업은 내가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보좌진은 그림자고 참모인데 리더 앞에 서면 참모가 아닙니다. 옆에 있거나 뒤에 있거나 해야 하죠. 그러나 기자는 내 자신이 컨텐츠입니다. 그게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당시 머니투데이 더300에서 국정감사 스코어보드라고 국회의원들 별점 평가를 시작했는데요. 그것을 처음 시행했던 멤버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일을 하고 첫 해에는 항의가 들어오고, 두 번째 해는 반반이더니, 세 번째 해는 선처를 해달라는 요구가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상위 20% 하위 20%만 공개 했는데 하위에서 항의가 엄청 들어왔었고, 그 사이 순위에 없는 국회의원들도 항의 했었습니다. 저희도 엑셀로 평가 항목을 만들고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중에는 매일 별점이 나오니까 한 두 번 정도만 힘을 줘서 1, 2등 랭크를 받으면 그걸로 의정보고서 쓰는 식으로 활용하기도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기자라는 직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을 이야기 한다면, 기자로 가기 전에는 국회 경력이 몇 년 안 되었지만 기자를 하고 국회에 복귀하니까 몸 값이 확 올라갔던 것입니다. 2년 동안 거의 매일 기사를 쓰다보니 거의 1,000개의 기사를 썼는데요. 그러고나니까 저의 글쓰기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사람들이 의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게 정무적인 메시지를 매일 아침 당에서 쓰기도 했습니다. ️보좌진이 기자가 되는 것은? "기자 1년이 보좌진 3년 정도 쳐준다는 느낌입니다." 보좌진은 정무적인 감각 같은 것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원내대표실, 정책의장실 등에 있어야 그나마 정무적인 것을 볼 기회가 있는데요. 저는 정치부 기자를 2년 하니까 보는 눈이 확 달라졌습니다. 새누리당 출입이었을 때 의원들이 저한테 문의도 많이 하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기자를 하면서 정무적인 감각을 많이 키웠습니다. 보좌진분들에게도 기회가 되면 기자가 되어보라고 권하고는 싶습니다. 앞서 얘기했던 감각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고, 커리어상으로도 다음 스텝을 갈 때, 기자 1년이 보좌진 3년 정도 쳐준다는 느낌입니다. 기자생활을 했다는 것이 그 이후에 다시 국회로 와서 의원실로 가든, 기업으로 가든 매우 크게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자였어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이야기 한다며, 사람들이 저를 '현상을 날카롭게 짚어낼 수 있는 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글을 잘 쓸 것이라는 기대도 받습니다. 또 하나는 네트워킹입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내가 들어서 아는데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국회에 다시 와서 정치부 기자를 만날 때, 기자 출신이란 것을 밝히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기자들의 일상을 안다는 것, 그들이 아는 용어를 쓰는 것, 들어서 아는게 아니라 해서 아는 것을 말해줄 때, 발제, 취재에 대한 감정을 공유할 때, 기자들로부터 혜택을 받습니다. 국회 출신들을 경력 공채로 뽑는 곳은 많지 않으니, 신입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이긴 할 것 입니다. 본인이 가진 컨텐츠가 뛰어나면 오퍼를 넣어서 받아줄 수도 있습니다. 과거 몇 언론사들이 정치 관련 프로젝트를 만들 때 소수를 뽑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보좌진을 하다가 기자 하다가 다시 국회로 온 케이스가 거의 없긴 합니다. 따러서 기자가 아니어도 자기 컨텐츠를 드러낼 수 있는 글들을 계속 쓰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제된 내용으로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보좌진에게 하고 싶은 말 "국회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기획자의 공간입니다." 개인적으로 보좌진을 직업으로 택한 자기만의 목적(왜?)를 잘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왜?를 잘 못 세우면 단순 월급쟁이가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불만입니다. 그런 세상이다 보니, 저는 자신만의 목적을 제대로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국회는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한 공간입니다. 비즈니스와 비교하자면 소위 기획자라 할 수 있습니다. 국회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기획자의 공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에 대한 고민이 없고 시키는 것만 하면 여기서는 필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에 익숙해야 하고, 변화가 당연해야 하고, 변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더불어 세상을 보는 인사이트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의원실 운영을 좀 효율적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워라밸보다 중요한 것이 일과 삶의 분리라고 생각하는데 국회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불필요한 야근을 하지 않고, 보좌관들이 집에 안 가서 다른 직원들 퇴근을 막지 말고, 금요일에 일 시키지 말고. 그런 것들이 잘 된다면 의원실 분위기도 좋고 효율적인 국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 해주신 박용규 님께 감사드립니다️
SELUB 2025.01.20 -
인터뷰선택받은 자, 장관 보좌관
아무나 가지 못하는 곳, 실력과 운과 인망이 모두 하나가 됐을 때 갈 수 있는 곳, 보좌진 중에서도 소수만 경험하는 장관 보좌관은 어떤 곳일까요? 보좌진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던 이종태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에게 듣습니다. 이종태 장관 보좌관 제21대 이영노용호의원실 보좌관 제20대 송희경의원실 보좌관 제19대 전하진의원실 보좌관 제18대 이정현고흥길의원실 선임비서관비서관 제17대 원희룡의원실 비서관 제29대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회장 국민의힘 국회보좌진위원회 초대 위원장 국회 선진정치연구회 회장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회 국회아젠다분과 간사 현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본인 소개 외고 재학 시절부터 정치인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에 국회의원을 꿈꿨습니다.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검사를 거쳐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목표로 법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군 전역 후 대학과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4년만 공부해 보자 다짐했는데 안 돼서 미련 없이 접었습니다. 입법부 공무원인 국회 보좌진을 선택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법대 고시반 조교 당시 친구가 국회 인턴으로 취직했는데 업무가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국회 채용사이트를 통해 검색하던 중 원희룡의원실 비서관 채용공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법고시 전체 수석에 차세대 정치리더인 원희룡 의원의 보좌진이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지원했습니다. 처음 맡은 업무는 정책이 아닌 수행이었습니다. 보좌관이 체력이 좋냐 묻길래 체력은 물론이고 일기를 꾸준히 써와서 계획수립과 정리를 잘 한다고 하니 수행을 해보라 했습니다. 17대 대통령 후보 새누리당 경선에 원희룡 의원님이 출마해 적응 기간도 없이 일정과 동선 파악하고 언론 상대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아마 국회 보좌관 중에 수행비서로 일을 시작한 경우는 제가 유일할 겁니다. 국회 보좌진의 업무는 크게 정책과 정무로 나뉩니다. 정책보좌진은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 정책에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예산결산 심사를 통해 정부예산이 제대로 쓰이는지, 정무보좌진은 각종 민원과 의전, 지역구 관리 등의 업무를 합니다. ️장관 보좌관으로 가게 된 스토리 인턴에서 보좌관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15여 년간 국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에 임명되었습니다. 정책보좌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서 정책보좌관은 해당 부처 소관 업무 중 기관장이 지시한 사항에 대한 연구 및 검토, 정책과제와 관련된 전문가이해관계자 및 일반국민 등의 국정 참여 촉진과 의견수렴, 정책보좌업무 수행기관과의 업무 협조를 수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정책의 수립은 정치가 하고 집행은 행정부가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정책의 의미는 거시적이고 총론적인 정책을 의미합니다. 행정부가 미시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담당한다면 거시정책은 정치가 수립한다는 의미입니다. 정책보좌관을 두는 목적은 부처의 정책수립 능력을 강화하기 위함입니다. 아울러 정책보좌관은 국정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합니다.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그리고 일반국민과의 소통 창구가 돼 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대통령실과 국회의 카운터파트들과 협의하는 것이 정책보좌관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장관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느낀 점 장관정책보좌관 제도는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4월 대통령령 17958호 정책보좌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허수아비부터 장관의 문고리 권력까지 다양하다 보니 정책보좌관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의 눈길에는 살짝 경계심이 서려 있는 듯합니다. 부처를 장악하기 위해 왔는지, 호가호위하며 월급만 받아 갈 상전일지 아니면 진짜 일을 하는 선수인지를 조용히 탐색하기도 합니다. 이렇다 보니 정책보좌관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장관과 행정부 공무원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원팀으로서 소통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부처별로 상황이 다르겠지만 정책보좌관은 장관이 주재하는 정책점검회의, 현안점검회의, 확대간부회의 등에 참석합니다. 국회 보좌관이 의원을 보좌하며 입법과 정책,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 예산결산 심사, 대언론, 지역구 관리, 선거운동까지 나름의 식견과 전문성으로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대응한다면 행정부 공무원들은 정책 전문가로서 최일선에서 국정과제를 수행합니다. 대한민국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국민을 섬기고 봉사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 하는 존재 의미와 역할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에서 커리어를 고민 중인 다른 보좌진들에게 하고 싶은 말 국회 보좌관으로서 쌓은 경험이 정책보좌관 업무 수행이 있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국정과제 이행과 정책 수립에 있어 행정부 공무원들이 행정적법률적 정합성을 제시하고 정책보좌관은 언론과 국민 여론의 정무적 판단으로 상호보완적 의견을 개진합니다. 정책보좌관은 사명감 없이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할지 명확해야 합니다. 사명감과 목표가 명확하다면 행정부 일원으로서 정책보좌관에 많은 동료 선후배 보좌진들이 도전했으면 합니다.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신이종태 장관 보좌관 님께 감사드립니다!
SELUB 2025.01.20 -
인터뷰대관 담당
셀럽에서는 국회 보좌진 출신으로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싣고자 합니다. 평생 직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국회 보좌진의 특성상 항상 다음 커리어는 고려를 해두는 것이 현명할 텐데요. '선출직 의원'에서, '사업가'까지 다양한 직종에서 활약하고 있는 보좌진 출신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현재 기업의 대관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OOO 님입니다. OOO 익명 요청 국회 근무 약 10년 (현 여당(국민의힘) 쪽 보좌진 출신) 현 모기업 대관팀 간략한 소개(국회 보좌진이 된 이유, 국회에서 했던 업무 등 포함해서) 선후배님들 안녕하세요. 저는 여당 쪽 의원실에서 10여 년간 보좌진으로 일하다 현재는 기업의 대관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인턴부터 5급 선임비서관까지 하나하나 겪으면서 여러분과 크게 다르지 않는 걱정과 고민을 헤쳐 나왔고요, 의원실 옮기면서 상임위도 다양하게 해보고, 의원님들의 당직들도 두루두루 겪어봤다는 것을 무기로 지금 직장에서 국회와 관련된 일을 아는 척 좀 하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의 위대함을 느끼며 비교적(회관과 비교해) 편안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국정감사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을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기에 현재에 더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놀리는 거 아니고요, 군 전역한 예비역이 현역 바라보는 심정 정도로 이해해 주세요) 왜 국회에 들어왔냐고 물으시면, 기업 대관이 되기 위해서 간 것은 절대 아니고요. 뜨거운 피와 열정을 가진 독자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면서 회관 생활을 버텼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과 멀지 않은 곳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는 기업 대관 중 한 명이고, 잘난 것도 없어서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제 신상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기로 한 점 양해 부탁드려요. 보좌진에서 대관이 된 계기 일단.. 회관이 너무 힘들었어요. 밖에서 돈도 많이 준다고 하고, 일도 먼저 나가신 분들이 회관보다 힘들 수가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기에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보좌진이 갈 수 있는 곳이 대관 말고는 거의 없기도 해요.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분들도 대관업무와 거의 비슷하게 일하는데 잘난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계속 의원실에 있을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좀 더 있으려 했을 것 같아요. 수도권 출신이라 지역 향후회 모임도 없고, 그렇다고 날고 기는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어서 밀고 끌어주는 사람도 없고, 의석이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 같은데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상황에 같은 의원실에서 일했던 형님이 끌어주시니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정쟁 상황에서 의원들에게 갑질당해 쫓겨난 이야기를 들으면 참 잘 나왔구나 싶으면서도, 친하게 지냈던 선후배들이 쟁쟁한 곳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사람이란 게 항상 자기가 가보지 못했던 길을 부러워하잖아요? 뭐.. 딱 그 수준이지만 지금은 국정감사 기간이니 독자 여러분이 부럽기보단 안쓰럽다는 마음을 더 갖고 있습니다. 대관업무 장단점 독자 여러분이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니 뭐 대충의 장단점은 이미 다 알고 계실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포인트 장점으로는 직업적 안정성, 단점으로는 을이 된다는 것이 맞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다녀온 군대가 제일 힘들었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제일 어렵고 힘들죠. 내 주변엔 다 빌런들만 있다고 생각하고. 뭐, 그게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양쪽을 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야기하자면 세상에 보좌진만큼 힘든 직장은 없어 보입니다.(물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각 방에 계신 빌런들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실제 기업으로 오기 전엔, 의원실 한두 명이 하는 일을 기업에선 팀끼리 한다는 소문까지 들었지만 그건 정말 케바케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규모 있고, 이름있고, 전망 있는 기업에 계신 분들은 그래도 다 자기 몫을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도 나름 쟁쟁한 사람들인데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기 밥값 하는 건 어디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관업무가 매일 회사의 일반 업무와 상관없이 국회에 앉아있다가 선후배들 밥 사주고 간식 사주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정말 착각이고요. 기업의 필요에 따라 의원실처럼 전천후로 일하는 사내 전문가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국정감사에서 증인 빼는 게 전부가 아니고요. 각 사업 부서의 민원성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고 회사에 유리한 법안을 만들기도 하고, 정가에 떠도는 정보들을 취합해 회사와 관련된 정보로 가공하여 경영자의 판단을 돕는 업무까지 합니다. 의원실에서 보좌진들이 다 같은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회사에서도 기본적으로 개인 역량에 따라 업무범위와 깊이는 다 다릅니다. 어딜 가나 잘하는 사람이 똑같이 잘한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 잘 찾아서 하는 건 변함없습니다. 대관의 장래, 커리어 패스 저도 그게 항상 걱정이고 고민입니다. 10대, 20대, 30대만 고민하는 거 아니고요. 40대가 되어도,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도 같은 고민은 항상 합니다. 회관에서 일하다가 배지 다신 분들이 롤 모델이신 분들 많을 텐데, 그분들도 배지를 달고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시더라고요.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죽을 때까지 다 다른 선택과 고민을 하는 것이니, 정답보다는 하면서 즐거운 일을 찾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회관에서는 내가 쓴 질의서가 방송에 나오고, 질의서 내용이 반영되어 제도가 변하는 걸 보면서 짜릿해 했지만 기업 대관은 그럴 일은 당연히 없죠. 삶의 중심이 나로 많이 변하고, 관심사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 여행, 투자 등으로 바뀝니다. 알고 보면 대부분 일반 직장인들이 그렇게 사는데, 저도 첫 직장이 회관이다 보니 그런 걸 몰랐어요. 출마를 고민하신다면 기업엔 안 나오실 거고, 기업에서 임원을 다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저도 채용을 진행해 보니 모든 게 기존 직원들 중심으로 사고를 하거든요. 여러분이 어느 기업을 가시던지 굴러온 돌이 되는 건데, 박힌 돌 빼고 중심이 되시려면 모든 게 많이 피곤하실 겁니다. 그렇다고 성공사례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 대관업무가 점점 중요해지고, 그중 국회의 중요성도 계속 커지기 때문에 부처 담당, 공정업무 담당들과 사내 경쟁으로 우월함을 입증하시면 팀장도 달고, 임원도 되겠죠. 대관도 기업의 사이즈와 업황 등에 따라 사내 입지가 천차만별이니 혹시 나가는 걸 고민하신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역할과 기업과의 궁합도 잘 확인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보좌진에게 하고 싶은 말 아무래도 국정감사 시즌이다 보니, 보좌진들의 갑질을 다른 시각에서 많이 접하게 되네요. 저도 회관에 있을 때 일 좀 했었고, 일을 하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갑질로 비춰질 수 있겠죠. 하지만 똑같은 짓(?)을 해도 그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평소에 어떻게 일했는지에 따라 외부 평가는 극렬하게 갈린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관에서 60세 넘을 때까지 보좌관만 오래오래 하다가, 보좌관에서 사회경력을 마칠 분이라면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껏 갑질.. 누리시고요. 내일 일도 예상이 안되는 회관에서, 60세까지 나의 삶을 보장할 능력이 되시는 분이 아니라면 내일 바로 대관 면접을 본다는 마음으로 일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A 의원실 B 비서관이 ~~이랬대"는 여러분이 계시지 않는 수많은 카톡방과 텔레그램을 통해 정말 순식간에 유통됩니다. 바로바로 소문이 안 나더라도 "B 비서관 어때요?"라는 질문 하나로 여러분도 잊고 있던 과거 행적까지 다 평판조회가 된답니다. 최근에도 어떤 기업에 어떤 분이 임원으로 가신다는 소문이 도니, 그분에게 당했던 수없이 많은 분들이 그 기업에 탄원을 넣고, 그분 때문에 증인을 부르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 것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말 좁은 곳이지만, 회관만큼 좁은 데도 별로 없다는 점을 항상 경계하면, 일과 인간관계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균형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원래 정답이 없다고 스스로 "노답"이 되길 선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신 'OOO' 님께 감사드립니다.
SELUB 2025.01.20 -
인터뷰충남 최연소이자 아산시 최초 20대 시의원, 김미성 시의원셀럽에서는 국회 보좌진 출신으로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싣고자 합니다. 평생 직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국회 보좌진의 특성상 항상 다음 커리어는 고려를 해두는 것이 현명할 텐데요. '선출직 의원'에서, '사업가'까지 다양한 직종에서 활약하고 있는 보좌진 출신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로는 충남 최연소이자 아산시 최초 20대 시의원, 김미성 시의원입니다. 김미성, 아산시 라지역구(탕정, 배방(장재리,세교리,휴대리), 염치) 시의원 국회 근무 기간: 2018년 ~ 2021년 간략한 소개(국회 보좌진이 된 이유, 국회에서 했던 업무 등 포함해서) 국회 보좌진에서 시작해 지금은 아산시 최연소 시의원이 된 김미성입니다.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제 지식을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써먹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대학 때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사회적기업 창업에 문을 두드리기도 했고,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인턴 기자를 거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갈증을 느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는 갈증이었습니다. 우연히 의원실 인턴 제도를 알게 됐고, 인턴으로 국회의 첫 발을 디뎠습니다. 7월에 들어와 3개월 뒤 국정감사를 거쳤습니다. 국정감사를 직접 해보니 정치가 제 적성에 맞는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국회에서는 정책, 홍보, 메세지 작성, 지역구 민원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했습니다. 특히 총선 전에는 10개월 전, 지역구인 아산에 실제 거주하면서 지역구 관리에 힘썼습니다. 이때 지역 정치에 새롭게 눈을 떴습니다. 시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정책과 메세지를 만들어내는 현장 정치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보좌진에서 시의원으로 출마하게 된 계기 결정적인 건 제가 모셨던 강훈식 국회의원님의 출마 제안이었습니다. 마침 그때 중앙정치에 대한 회의감을 크게 느꼈습니다. 소모적인 정쟁에 에너지를 쏫아붓기보단, 실제로 피부에 와닿는 정치가 하고 싶었습니다. 아산에 살면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목소리를 기반으로 정책을 입안했던 것에 더 큰 보람을 실제 느낀 바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의 중심에 우리 삶을 두는 시의원이 되고자 했습니다. 보좌진으로서 선거를 해본 경험과 자신의 선거를 해본 경험의 차이가 있다면? 사람의 중요성을 더 크게 깨달았습니다. 보좌진으로서 선거를 치룰 때는 김미성 개인의 역량을 발휘했다면, 제 선거에서는 지지자와 지역구민을 대신해 제 역량을 발휘한다는 것이 큰 차이였습니다. 처음 길거리에서 명함을 나눠줄 때, 몸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지지자분이 후보님 명함 더 돌리고 다녀야 해요라며 저를 독려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분들은 개인 시간을 할애해서 제 선거를 위해 애써주시는데, 명함 돌리는 것으로 힘들어했던 제 자신이 참 나약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선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나를 믿고 지지해준 분들을 위한 것이라며 관점을 고쳤던 순간이었습니다. 제 선거를 통해 시민을 대리해서 하는 일에 대한 무게감과 책임감을 처음 느꼈습니다. 선출직 의원은 이런 점에서 국회 보좌진과 다르다? 제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무게감이 선출직 의원일 때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국회에서 질의서를 쓸 때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는 고민은 없었습니다. 관료들의 행위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선출직 의원은 직접 관료와 눈을 마주치고, 행정부를 질타합니다. 비판과 견제는 당연히 해야하지만 한편으로는 해당 관료에 대해 인간적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마음이 비판의 수위를 낮출 수는 없습니다. 다만 비판에서 더 나아가 대안까지 제시하는, 생산적인 질의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보좌진과 선출직 의원을 모두 해봤던 입장에서 출마를 원하는 국회 보좌진에게 하고 싶은 말 사명감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왜 정치를 하고 싶은지, 어떠한 정치를 펼치고 싶은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그 내용이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출마하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그 고민을 긴 시간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고민의 답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제 지역구민과 호흡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정책에 녹이고, 이를 글로 풀어 SNS 등에 게재하며, 고민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일단 현장에서 부딪쳐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타 하고 싶은 말 혹은 원하는 질문이 있으면? 제 의정활동의 목표는 더 많은 시민들이 정치를 사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정책을 입안할 때 시민들과 호흡하고, 그 목소리를 정책에 녹이고, 피드백을 통해 정치의 효능감을 높여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그 방법을 찾아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신김미성 시의원 님께 감사드립니다.
SELUB 2025.01.20 -
정치사국회 보좌진의 역사일 년 내내 돌아가는 임시회와 국정감사, 예산, 그리고 선거까지. 쉼 없는 정치 일정에 계속되는 야근과 주말 출근을 견디며 묵묵히 역할을 해내느라 고생이 많으실 텐데요. 오늘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정치 엘리트이자 정치 리더인 국회 보좌진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셀럽은 지금 이 시간에도 격무에 시달리며 국민을 위해 일하시는 보좌진 여러분을 항상 응원합니다! 국회 보좌진에 관한 법률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 ( 약칭: 국회보좌직원및의원수당법 ) 제2조(보좌직원)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보좌관 등 보좌직원(이하 보좌직원이라 한다)을 둔다. 국회의 또 다른 주인공 보좌진의 역사 1981년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비서관등 보조직원을 둔다' 조문이 신설 1984년 12월 법률 개정으로 '보좌관'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 2010년 3월 12일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보좌관 등 보좌직원을 둔다"라고 하여 보조직원을 '보좌직원'으로 개정해 지금의 '보좌진' 이라는 단어로 자리 매김 국회 보좌진의 등용문, '국회 인턴'의 역사 1999년 청년실업 해소와 국회의원 입법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회 인턴제' 첫 도입 2003년 '국회인턴 시행규칙'에 따라 국회사무처와 인턴계약자 간 고용계약을 통해 국회의원실마다 2명의 인턴 고용이 가능해짐 2017년 '국회인턴제 운영지침 일부개정지침안' 시행으로 인해 국회 인턴의 재직기간 총 2년 초과 금지됨 2018년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인해 국회의원실 인턴 2명에서 1명 고용으로 변경
SELUB 2025.01.20 -
정치사국정감사의 역사국정감사란? 국정감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영국에서 전범 등 책임 규명의 진상을 찾기 위해 조사단을 꾸린 것 부터 시작. 이후 미국에서 도입하면서 제도적으로 정립. 행정부가 전문화비대화되고 행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지면서 국회의 국정통제기관으로서의 지위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국회가 행정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 국정감사의 의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하여 그 실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입법 활동과 예산심사를 위해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획득하고, 국정에 대한 감시비판을 통하여 잘못된 부분을 적발시정함으로써 국회의 입법기능예산심사기능 및 국정통제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제도적 의의가 있으며, 국회는 국정감사를 통하여 국정전반의 문제점을 포괄적으로 지적하고 향후 국정운영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음 국정감사의 중요성 국민의 알권리를 실현시키며 이를 기초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대의기관으로서의 국회의 본질과 직결된 제도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 국정감사의 역사 대한민국에서는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제헌헌법에 상시청문회 제도를 넣으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미국식 청문회 제도와 영국식 국정조사가 혼합된 방식으로 정해졌음. 또한, 1년 안에 기간을 정해서 하는 기획형' 국정감사 제도가 되었음 제헌헌법부터 제3공화국 헌법까지 대정부통제를 위한 국회의 권한으로 헌법에 명시되었으나, 제7차 헌법개정 시(1972.11.) 폐지되었다가 그 후 제9차 헌법개정 시(1987.10.) 다시 명문화되었음 1972년 유신 헌법에서 행정부의 권력집중의 필요성과 국정운영의 효율성 제고를 이유로 폐지되었다가 국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헌정사적 반성을 계기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회의 국정통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1987년 헌법에서 부활되었음 상설감시제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기간을 정해서 국감을 진행중임. 따라서 지금도 계속해서 국회에서는 상시 국감에 대한 주장이 나오고 있음 국정감사에 관한 법률 대한민국 헌법 제61조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약칭: 국감국조법) 제2조(국정감사) 국회는 국정전반에 관하여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매년 정기회 집회일 이전에 국정감사(이하 감사라 한다) 시작일부터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감사를 실시한다. 다만, 본회의 의결로 정기회 기간 중에 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 제1항의 감사는 상임위원장이 국회운영위원회와 협의하여 작성한 감사계획서에 따라 한다. 국회운영위원회는 상임위원회 간에 감사대상기관이나 감사일정의 중복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이를 조정할 수 있다. 제2항에 따른 감사계획서에는 감사반의 편성, 감사일정, 감사요령 등 감사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하여야 한다.
SELUB 202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