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일입니다. 이를 맞아 DJ의 정치 입문 스토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1편에 이어 2편에서는 본격적인 정치활동의 시작과 좌절을 반복하는 DJ의 출마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이렇게까지 정치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DJ의 인생 스토리 시작인 '정치 입문기'. 지금 출마를 생각하고 있는 보좌진이 계신다면 꼭 보셔야 합니다.
*이후 계속해서 다른 대통령들의 스토리도 준비하겠습니다.
서울 상경과 본격적인 정치활동의 시작
낙선한 김대중은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 서대문구 대현동에 집을 구함. 국회의원 박순천을 만나 도움. 한국노동문제연구소를 설립해 노동문제를 연구함. 또한 언론에 활발히 기고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림
당시 이승만 정권은 사사오입개헌을 통해 3선 연임을 가능케 하였음. 이에 야권은 민주당 창당으로 야권 통합을 일구어냄. 다만 진보계는 참여가 배제되고 보수연합세력이 됨.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은 이승만이 당선됐으나 부통령은 야당인 민주당의 장면이 당선됨. 김대중은 제3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민주당에 입당하여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함
장면 라인에 올라타다
김대중은 당시 부통령인 장면 계파라 할 수 있었는데, 아내가 천주교 신자라 명동성당에 다녔고 장면도 천주교인이었기에 자주 만날 수 있었음. 야당 출신 부통령이던 장면이 총탄에 피습된 일이 있었는데, 이를 목격한 김대중은 병원으로 달려가 장면 앞에서 통곡했고 이후 장면의 추천으로 민주당에 입당하고 중앙상임위원도 될 수 있었음. 또 장면을 대부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음
후보등록에 실패..이후 재선거에 출마 하지만 낙선
제4대 민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은 어디서 출마를 할지 고민함. 목포는 현역 의원이 버티고 있었고 서울은 무명의 청년이 공천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음. 결국 한국전쟁 이후 새롭게 남한에 편입된 인제에서 출마하기로 함. 유권자의 대부분이 군인이거나 군속 가족이었고 야당 성향이 강했기 때문. 하지만 ‘후보 등록 방해 사건'으로 후보 등록을 하지 못함. 이후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해 승소하여 재선거를 실시하였음. 하지만 이번에도 자유당의 방해공작으로 낙선함. 계속된 낙선으로 생활고에 고생하던 아내인 차용애가 사망함
또 낙선...
3.15부정선거와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고 열린 제5대 민의원 선거에 인제에서 다시 출마하지만 이번에도 낙선. 그러나 장면이 제2공화국 초대 총리가 되면서 김대중을 여당인 민주당 대변인으로 임명함. 혁명의 과정에서 당시 부대변인이었던 김대중의 역할을 인정했기 때문. 이렇게 김대중은 중앙으로 진출
마침내 당선됐지만...
5대 민의원 선거에서 인제에 당선된 전형산 의원이 3.15부정선거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재선거가 실시되고 마침내 김대중이 당선됨. 4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금배지를 달게 된 것. 하지만 이틀 뒤 5.16군사정변이 발생해 국회가 해산됨
참고: 김대중 평전1(시대의 창), 행동하는 양심으로(김대중, 금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