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친이, 친박의 분열을 겪던 한나라당은 그 해 4월 재보선에서 패배하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요. 같은 해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난데없이 서울시 주민투표라는 변수가 나타나며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안철수라는 인물의 등장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오세훈 시장의 사퇴
2010년 12월 1일 초중생을 대상으로한 무상급식 조례안이 서울시의회를 통과함. 이에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1월10일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의회가 거절. 이후 주민투표 청구인 약 70여만 명을 모아 다시 주민투표 청구를 제출함. 이에 민주당은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말자는 운동을 전개, 결국 8월 24일 실시한 주민투표에서 유효투표율인 33.3%에 못미치는 25.7%의 투표율에 그쳐 주민투표는 무산되고 말았음. 한나라당은 10월 재보궐선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사퇴를 만류하였으나 오세훈 시장은 사퇴함
안철수 현상
오세훈 시장의 사퇴로 재보선 2달을 앞두고 서울시장 선거도 치뤄야 했음. 시민운동가 박원순이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무릎팍 도사로 대중에 어필하고 ‘청춘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전국 청년들에게 순회강연을 하고 있던 안철수도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짐. 당시 무소속이던 안철수는 5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중이었고 박원순은 10% 안밖의 지지율이었음에도 안철수가 양보를 하여 단일화를 이뤄내면서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냄. 이후 민주당의 후보로 선출된 박영선이 야권 통합 경선에서 박원순에 패배함으로써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못함. 결국 박원순이 야권 단독 후보로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꺾고 당선됨. 결과적으로 안철수 현상으로 인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모두 서울에서 자당 후보를 당선시키지 못함. 정치권에 제3의 세력 열풍이 불기 시작
참고: 한국정당정치사, 백산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