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여론조사 1탄 태동기에 이어 우리 정치에서 활발하게 여론조사를 활용하기 시작한 시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선거를 움직이는 힘은 그런 소수의 목소리 큰 지지층이 아니라, 다수의 말 없는 대중이다."
15대 대선과 DJP 연합
13, 14대 대선을 겪으며 정치권 내 여론조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커짐. 여론조사 기관 역시 종전에는 한국갤럽이 유일했다면 코리아리서치, 월드리서치, 동서리서치 등 여러 기관이 생겨남
1997년 대선은 일 년 내내 각 후보들을 비교하는 여론조사가 보도됨. 본 선거뿐 아니라 각 당의 경선에도 여론조사가 큰 영향을 미침. 야당에서는 DJ와 JP가 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여당인 신한국당의 경우 이회창, 이인제 등 9명이 대결하고 있었음. 이전에는 3김 시대였던 만큼 당내 경선이 큰 의미가 없었음. 신한국당 경선이 처음으로 치뤄지는 진정한 의미의 당내 경선이라 할 수 있었음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이 승리하였으나 이인제는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함. 대의원 선거에서는 패했으나 실제 국민들 사이에서는 지지율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했기 때문. 실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 해 6월 이인제가 김대중에 이어 2위를 기록해 이회창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였음.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는 이 흐름으로 이어졌음
여론조사 1위였던 DJ는 30%의 지지율로는 불안하다 느껴 4위를 기록하던 JP와의 연대를 모색했고 결국 성사시켰음. 이회창은 우선 5위인 조순과 단일화를 이뤄 지지율 2위까지 올라갔음. 이후 이인제와의 단일화를 모색했으나 지지율이 상승 중이었기에 자연스레 보수 표가 이회창 자신에게로 몰릴 것이라 예상하여 이회창, 이인제 단일화는 성사되지 못함
15대 대선을 기점으로 정치권은 적극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여 선거 전략을 짜기 시작했음
참조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치하라」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