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치와 선거에서 여론조사는 엄청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사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여론조사가 가진 비중이 커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치사에서 어떤 계기를 통해 여론조사가 중요해졌는지 알아봅니다.

 

"선거를 움직이는 힘은 그런 소수의 목소리 큰 지지층이 아니라, 다수의 말 없는 대중이다."

 


 

13대 대선: 노태우 vs 김영삼 vs 김대중 vs 김종필

 

1987년은 민주화에 대한 전국민적 열망이 들끓던 시기.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는 6월 항쟁 직후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6.29선언을 발표함

 

당시는 직선제를 받아들일 경우 노태우 후보가 당선될 수 없다는 분위기였음. 여론조사팀은 물론 여론조사에 대한 중요성도 인식하지 못한 ‘양 김’ 진영은 모두 다 나와도 자신이 이긴다는 근거 없는 망상에 빠져 있었음. 이에 비해 전두환 정권은 여론조사팀을 운영하며 양 김이 모두 출마한다면 노태우 후보가 100% 승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갖고 있었음. 이를 바탕으로 직선제를 반대하던 노태우 후보에게 반 강제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도록 전두환 정권이 압박했다는 설이 있음

 

이전까지는 대통령 선거가 간접선거였고 국회의원 선거도 지역 단위로 쪼개져 제대로 된 여론조사는 거의 전무했음(한국갤럽조사연구소 정도가 유일). 즉, 민심을 파악할 수 중요한 정보는 정부와 여당이 독점하고 있었고, 한국갤럽만 막으면 됐던 것. 실제 13대 대선의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 전에 발표하지 못했고 12월 16일 투표가 끝나고 각 언론사에 배포할 수 있었음

 

당시 4자 구도에서 최대의 이슈는 YS와 JP의 단일화였지만 성공하지 못했음. 만일 제대로 된 여론조사팀이 야당인 민주당에 있었으면 YS가 JP의 손을 잡는 전략을 펼쳤을 수도 있음

 

결과적으로 여론조사에 대한 정보를 가진 노태우 후보측(정부, 여당)은 전략적으로 선거에 임할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양 김은 직선제 쟁취와 지지자들의 환호에 취해 YS/JP 단일화 실패, DJ의 4자필승론과 같은 데이터 없는 전략에 의존하는 결과를 가져옴

 

참조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치하라」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