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주의 정치 이슈 심층 분석
선거 시즌 당대표의 출국 - 회피인가 전략인가
갑작스러운 장동혁 대표의 출국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1일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당초 발표에 따르면 14일부터 17일까지 2박 4일 일정이 예정돼있었는데, 수정된 5박 7일 일정으로 예고 없이 출국했습니다. 장 대표는 출국 후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본인의 SNS를 통해 출국 사실을 알렸습니다. 국민의힘 당 지도부조차 장 대표의 출국에 대한 공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장 대표가 가는 줄 몰랐다. SNS를 보고 간 걸 알았다. 김민수 최고위원이 같이 가는 줄도 몰랐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지방선거가 5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장 대표의 출국에 대한 의문이 연일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선거 시기에 매우 일정이 촉박할 텐데 미국까지 출장을 가시니 어떻게 저렇게 신통한 능력이 있을까”라며 비꼬기도 했습니다. 국민의힘 당내에서도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배현진 의원은 “선거를 포기한 것이라면 용기 있게 2선 후퇴든 완전 사퇴든 결단을 해서 후보들이 당선될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 된 주호영 의원은 각종 인터뷰에 출연해 장 대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주 의원과 함께 컷오프 된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 또한 컷오프에 불복하며 “8인 경선을 복원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즉, 아직 공천 과정에 당대표가 나서서 정리해야 하는 사안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장 대표의 비공개 출국에 대해 비판이 이어지면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질의응답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대식 당대표 특보단장은 이 자리에서 “당대표는 당대표가 할 일이 있다”며 “당대표가 없다고 해서 공천 전체가 올스톱되는 건 아니지 않나. 충분한 시간이 있고 시스템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이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장 대표는 당대표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 비난의 소재로 쓰일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판을 감수한 장 대표의 방미는 무엇을 노린 것일까요.
장동혁 대표의 네 가지 키워드
장 대표의 이번 방미 목적이 보수 세력,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행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얼마 전 장 대표를 강력하게 지지하던 유튜버 전한길 씨가 국민의힘을 탈당하는 등 강성 지지층 내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이들이 강조하는 키워드는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자유우파, 시장경제, 부정선거, 한미동맹. 이번 방미 과정에서 지지자들에게 네 가지 키워드에 대한 장 대표의 스탠스를 우회적으로 비추면서 지지층의 분열을 막으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자유우파
장 대표는 출국 사실을 밝힌 SNS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자유와 법치, 시장질서까지 흔들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 워싱턴으로 출발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대한 전선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성 지지자들에게 ‘자유우파를 지키기 위한 출국’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입니다. 또한, 장 대표의 방미 일정에 IRI 원탁회의 참석이 있다고 알려진 가운데, IRI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 당시 설립된 세계 민주주의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입니다. 공화당 계열의 싱크탱크로 여겨지며 개도국이나 후진국의 민주주의 선거와 정치 시스템 지원을 목적으로 합니다. ‘글로벌 민주주의 지원 기관’이라는 점과 공화당 주류가 이사진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은 자유우파와 한미동맹을 외치는 지지자들에게 충분한 메시지가 됩니다.
시장경제
장 대표의 미국 일정이 김 최고위원의 SNS를 통해 공개되고 있습니다. 김 최고위원이 SNS를 통해 만남을 밝힌 인물은 현재까지 두 명입니다. 한 명은 대럴 아이사 공화당 하원의원, 한 명은 조 그루터스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입니다. 아이사 의원은 최근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던 인물입니다. 당시 국민의힘은 ‘특정 기업에 대한 과도한 제재로 비칠 수 있는 조사와 제재는 공정 질서 확립이 아니라 기업 활동의 자유와 국가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논평을 내면서 정부의 대응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부정선거
그루터스 의장은 부정선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우편투표 인정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법안을 지지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유튜버 전 씨의 부정선거 의혹 토론 직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선거 시스템을 바꾸는 문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아젠다가 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10일부터는 ‘공정선거 감시 TF’를 만들고 책임당원을 대상으로 감시단 모집을 시작했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장 대표와 그루터스 의원이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한 SNS 게시물에 “그루터스 의장이 ‘투표 참여는 더 많이, 부정투표는 더 적게(vote more, cheat less)’라는 강한 메시지를 공유했다”고 적었습니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직접적으로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조심하면서, 우편투표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의 말을 빌려 간접적으로 한국의 사전투표에 대한 의견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측면이 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것이 장 대표가 김 최고위원과 함께 출국한 이유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물론 장 대표가 앞서 언급한 두 명의 인물만 접촉한 것은 아니며, 공식적인 방미 목적은 아닙니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본인의 SNS에 두 인물과의 만남만을 업로드했습니다. 다른 스케쥴에 비해 부각돼서 언급되는 이유입니다.
한미동맹
후발대로 출발한 국민의힘 방미단은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한국을 언급하며 동맹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주말 이스라엘을 향한 이 대통령의 SNS는 명백한 외교 참사”, “이번 방미 성과로 외교와 안보만큼은 국민의힘이 잘한다는 확실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철저한 혈맹 관계를 각인시키고 돌아오겠다”며 출국에 나섰습니다. 정부여당이 외교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고, 대통령이 벌인 일을 야당에서 나서 수습하겠다는 것입니다. 한미 동맹이 중요하며 장 대표의 방미로 한미 동맹이 강화됐다는 이미지를 만드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장 대표가 이스라엘계 단체와 만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이렇게 장 대표는 네 가지 키워드에 대한 메시지를 완성합니다. 지지층이 원하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견고한 지지층 결집을 이루어 내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지지층 결집과 야당의 외교가 지방선거의 승리로 이어진다는 주장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이 부분이 장 대표가 비판을 받는 지점입니다. 이번 선거가 총선거였다면 유효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유능한 행정가’를 뽑는다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국민의힘 당대표가 외교 성과를 냈으니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찍을 것’, ‘우리 지역 시장이 국민의힘 소속 시장이 되면 대한민국의 외교력이 상승할 것’과 같은 논리가 작용할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선거 이후 본인의 당권 유지를 위한 행보라는 비판이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수
다만, 장 대표의 방미가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내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동혁 대표가 방문하지 않는 것이 선거 운동을 도와주는 것’, ‘후보들이 당대표 방문을 경계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장 대표는 지난 6일 인천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서 윤상현 의원과 배준영 의원 등에게 “당이 후보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쓴소리를 듣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예정돼있던 세종시 방문 일정과 강원도 현장 일정을 취소하고 출국에 나선 것입니다. 일정을 예정보다 앞당긴 것 때문에 도피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인천에서의 일을 기점으로 장 대표의 현장 방문이 갈등을 유발하고 그것이 장 대표에게도, 후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어느정도 확인된 상태입니다.
이런 장 대표의 입지에 더해 대통령 지지율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힘 지지율을 한참을 웃도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력과 세력의 대결 구도로 가게 되면 국민의힘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 없습니다. 전선을 좁히고 각 지역에서 유능한 ‘인물’을 뽑는 구도로 가야 합니다. 당대표가 장 대표가 아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당이 후보의 배경으로 부각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물 간 대결임을 강조해야 하고, 이번 선거를 ‘국민의힘 대 더불어민주당’으로 규정하는 것은 국민의힘에게 불리한 상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지율이 낮은 당의 대표는 지역을 돌아다니기보다는 중앙에서 세력 대결을 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정부여당을 공격할 만한 굵직한 이슈는 외교와 국정조사 정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 문제를 공략하는 것이 장 대표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합니다. 그만큼 정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선거에서 후보를 배출하고 배출한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입니다. 장 대표를 향한 비판은 그래야 하는 시기가 왔는데 그 일을 하지 않고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지점입니다. 장 대표가 귀국 후 방미 성과 발표에서 이번 방미 일정과 지방선거 승리를 확실하게 연결 짓지 못 한다면 더욱 거센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될 것입니다. 지금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보안으로 인해 말하지 못 하는 성과가 아닌 눈에 띄는 성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