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전화는 보좌진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습니다. 특히 이제 막 의원실에 발을 들인 신입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떤 보좌진은 그 민원 속에서 법을 배우고, 절차를 익히고, 결국 스스로를 성장시켰다고 말합니다.

 

20대에 막내 비서관으로 국회 생활을 시작한 필자가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받아냈던 민원 전화들이 왜 지금은 소중한 훈련으로 기억되는지, 그 솔직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금 수화기가 무거운 Young한 보좌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을 보내주신 김의겸 님께 감사드립니다🙇.


Young한 보좌진이 읽어주시길 바라는민원 이야기

나는 20대에 막내 비서관으로 의원실에서 근무했다. 민원 전화도 많이 받고, 무턱대고 찾아온 민원인을 대응하는 일도 많았다. 당시 보좌관 공석이 길어서 아침부터 오롯이 민원인 대응으로 퇴근 시간을 맞은 적도 많았다. 당시에는 퇴근 시간만 기다려지는 고단한 업무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소중한 훈련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국회에 발을 들인 Young한 보좌진들이 있으시다면, 민원이 왜 나에게 소중했는지 이야기를 좀 드리면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안 되고 안 돼서 찾은 국회

보통 일상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해당 기관이나 회사의 민원 창구에 연락한다. 그런데 민원이 처리되지 않으면 일부는 소비자원, 금감원 같은 감독 기관을 찾는다. 국회로 바로 전화를 거는 사람은 드물다. 의원실까지 도달한 민원은 이미 여러 단계에서 거절당하고, 튕겨 나오고, 체념한 끝에 당도한최종 단계인 경우가 많다.

 

이런 민원들은 행정기관 입장에서는 이미악성혹은종결로 분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담당 공무원들은 민원인의 이름만 들어도 매뉴얼처럼 거절된 이유를 줄줄 읊어주기도 했다. 여기저기 치이면서 민원인들이 지치고 상처받은 경우도 꽤 많았다.

 

 

안 되는 게 진짜 안 되는 걸까

민원 중에는 분명 무리한 요구도 섞여 있다. 본인의 과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공무원을 괴롭히며 화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억지를 부리는 민원인을 길게 대한 적이 있는데, 목소리가 높아지고 화가 났다. 보좌진 역시 감정이 상하고 목소리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거친 항의 속에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억울함이 숨어 있을 때가 있다.

 

과거 권익위에서 거절당했다며 전화가 오신 한 어르신의 토지 보상 민원이 있었다. 어르신께 본인 소유의 임야가 있었는데, 지역개발공사에서 공공건물을 지으면서 그 임야의 토지를 이용했지만 보상이 없었고, 문의를 하니 해당 건물 부지만큼의 땅이 본인 소유가 아닌 것으로 되어 있었단다. 권익위에 확인 전화를 하니 담당 기관에서 해당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어 민원 종결을 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도 어르신이 거짓말을 하시는 것 같지는 않아서 관련 서류를 보내달라고 말씀드렸다. 스캔은 고사하고, 휴대폰으로 서류가 온전히 보이도록 사진을 찍는 법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다. 관련 서류를 확인한 결과, 분명히 해당 부지의 땅은 어르신 소유가 맞았다. 사진 찍는 것도 한참 걸리는 어르신이 우연히 건물 부지에 해당하는 땅만 팔았을 리도 없었다. 권익위, 그리고 해당 공사와 소통했고, 며칠이 걸려 지자체 담당 부서에서 서류를 넘기며 일부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로 그랬다. 이후에는 담당 부서에서 어르신과 소통하여 절차를 밟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만약 내가공무원 말이 맞겠지라며 전화를 끊었다면, 그 어르신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악성 민원인 취급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민원인이 정말 억울하더라도 법도 모르고 말주변도 없어서 피해를 입은 사례들이 실제로 있다. 공무원이 실수를 해서 문제가 생겨도 민원인이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안 된다는 공무원 말만 들었으면 어르신의 민원을 무시했을 것이다. 조금 의심해 보고 관심을 가지면 억울함이 보일 때가 있다.

 

 

특수 민원?

의원실에 있다 보면 소위특수 민원을 접한다. 의원이 직접 지시하거나 지역구 유지가 요청하는 건들이다. 특수한 민원들은 유독 중요하고 신경이 쓰인다. 당연히 잘 처리해야 한다.

 

의원이 어느 날 지역구 민원인을 연결해 준 적이 있다. 학교 근처에 소 키우는 농장이 들어오는데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알고 보니 민원인은 전직 시의원이었고, 들어올 농장의 소유주는 같은 지역구 현직 시의원이었다. 결국 자리싸움이었다. 지역 시청과 농식품부, 그리고 전·현직 시의원들 사이에서 협의를 해서 어떻게 잘 화해시켰다. 의원이 큰일을 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국회의원 하나 보고 일하는 막내 입장에서는 그 칭찬이 얼마나 달던지, 이후로 의원이 요청하는 민원이 아니면 일반 민원은 그냥 무시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함께 입법 민원을 처리하던 민원인과 대화를 하다 태도를 고치게 되었다. 민원인께서는어떤 민원이든 다 절박하시겠지만, 그래도 국회에서 일하시는 분과 해결을 해나가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라고 하셨다. 일반 국민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국회에 소속되어 있기에 해결할 권한을 가졌다는 뜻이다.

 

의원의 관심이 쏠린 민원에만 집중하다 보면, 이름 없는 국민의 소소한 민원은 귀찮고 사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보좌진도 공무원이다. 우리가 가진 권한과 권위는 모두 국민으로부터 잠시 빌려온 것이다.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모든 국민의 어려움을 수화기 너머로 경청하는 것, 그것이 보좌진의 가장 기초적인 직업윤리다. 때로는 민원이 힘들어도 수화기를 한 번 더 들고 시간을 내며 고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원은 성장의 과정

요새 국회 보좌진에는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대학교 재학 중인 어린 보좌진들도 굉장히 많다. 나도 대학교 졸업 전에 국회에서 일을 했다. 국회 업무는 인수인계가 쉽지 않고 대부분 구전이나 개별적인 경험으로 전수된다. 그래서 신입 보좌진에게 업무 파악은 막막한 숙제이기도 하다. 나는 그 해결책이 바로 민원에 있다고 확신한다.

 

개인적으로는 민원을 처리하는 경험이 업무를 빠르고 깊숙이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하던가. ‘잘 전달하겠다라는 말로 흘려보낼 수 있는 전화 한 통도 더 고민해 보고 물어보다 보면 관련 법령과 절차에 대해서 금방 이해하게 된다.

 

수년간 모 보훈단체의 기념일 민원을 맡았을 때다. 나는 상임위 간사 의원실의 막내였다. 당시 많은 의원이 공감하여 발의도 된 법이었는데, 정작 소위에 상정도 되지 않아서 지지부진 몇 년을 넘어온 법이었다.

 

왜 이 법이 상정이 안 되었고 논의가 지지부진했는지 법안이 걸어온 길을 쭉 돌아보았다. 수년 치의 회의록을 뒤져서 문구 하나, 단어 하나 샅샅이 살폈다. 민원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자 평소와는 다른 눈으로 회의록과 문서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간사 간 협의가 무엇이고, 담당 보좌진의 권한과 한계를 이해하고, 입법 과정에서 국회 직원들과 부처 공무원은 어떤 일을 하는지까지도 전부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의원을 설득하고, 우리 의원이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실 수 있도록 꼼꼼하고 치밀하게 내용과 전략을 준비했다. 결국 1년 만에 기념일이 제정되었다.

 

민원인께서는 내게 능숙한 능력으로 몇 년간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주시지만, 나는 오히려 이 민원 덕분에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민원은 겉핥기식 업무 이해를 깊이 있는 전문성으로 바꿔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이다.

 

 

수많은 민원이 나를 만든다

처음에는 전화 소리가 무섭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민원을 단순히 선배나 의원에게 토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낮은 직급에서도, 어린 나이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관계 부처에 묻고, 법을 찾아보고, 설득하는 그 모든 과정은 고스란히 실력이 될 것이다. 또한 무언가를 해결했을 때 오는 자존감은 직장을 넘어서 나라는 사람의 삶에서 큰 동력이 된다. 능숙하신 보좌관님들의 노련함은 수많은 민원을 해결해 본 감각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간절함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 작은 순간이 당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바꿀 기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