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결전의 시간, 국정감사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자료와의 사투와 촌각을 다투는 정무적 판단 속에서 고군분투하실 보좌진 여러분을 위해 SELUB이 준비했습니다.
17, 18, 21, 22대 국회를 두루 거친 베테랑 보좌관을 만나 국정감사의 시작인 '아이템 발굴'부터 성과를 극대화하는 '자료 요구 및 분석 노하우', 승리를 결정짓는 '질의서 작성법'과 '언론 활용 전략', 그리고 그 성과를 '입법'으로 완성하는 사후 관리까지, 국정감사의 전 과정을 관통하는 실전 압축 노하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치열한 국정감사 현장에서 이 콘텐츠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지도이자, 승리를 위한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이 소개: 신진안
- 전) 안철수 국회의원실 보좌관
- 전) 청와대 행정관(국가안보실, 정보융합비서관실, 안보전략비서관실)
- 제17, 18, 21, 22대 국회 보좌진
자기소개
저는 제17, 18, 21, 22대에서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근무했습니다. 주로 외교·안보·국방 상임위를 중심으로 일했고, 예결특위·윤리특위·첨단전략산업특위 등 다양한 특위 활동도 했습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도 근무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는 유럽에서 학업을 하고 육아와 가사에 매진하던 시기가 있었고, 2022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국회 보좌관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대학원을 마치자마자 배운 학문과 정책적 아이디어를 현실 정치에서 구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국회에 지원했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보좌관 일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애쓰고 계실 선후배 보좌진 여러분께, 열 번 넘게 국정감사를 치러본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국정감사는 1년 중 가장 힘들지만,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국정감사, 6단계로 접근하라
저는 국정감사 준비 과정을 크게 여섯 단계로 나눕니다.
- 아이템 찾기: 상임위 업무를 파악하고 좋은 아이템을 발굴합니다.
- 자료 요구: 유관 부처에 핵심 자료를 요구합니다.
- 자료 분석: 확보한 자료의 의미를 분석하고 통찰을 얻습니다.
- 질의서 작성: 날카롭고 설득력 있는 질의서를 만듭니다.
- 언론 활용: 질의 내용을 국민께 알립니다.
- 사후 관리: 국감의 성과를 입법과 예산으로 연결합니다.
1단계: 좋은 아이템을 고르는 기준
아이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민생 현안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변에서 발견될 수 있고 국민과 보좌진이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방위·외통위라고 민생과 무관한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병영 생활 속 군 장병들의 삶의 질 문제는 우리 형제·자매, 아들·딸과 직결되죠. 이런 주제가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다면 좋은 아이템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는 '시의성'입니다. ‘그게 중요하긴 한데, 왜 지금 논의해야 하죠?’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좋은 아이템이 아닙니다. 국정감사는 학술 연구가 아니라 지금 당장 정부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제보, 현장의 목소리, 신문 기사 속에서 '바로 지금' 다뤄야 할 아이템을 찾아내야 합니다.
2단계: 자료 요구의 요령
국회의원회관에서 일하다 보면 제보가 많이 들어옵니다. 그럴수록 균형감을 잃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꿰뚫어야 합니다. ‘문제 제기를 위한 문제 제기’는 사회적 비효율만 키웁니다. 무턱대고 “이거 요구해보자” 식으로 던지면 행정력 낭비가 커집니다. 한 번 더 옥석을 가린다는 매의 눈이 필요합니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남발형 요구입니다. 부처나 유관 기관 입장에서 ‘요구자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구는, 의미없는 자료만 돌아오게 하고 서로 피곤해질 뿐입니다. 특히 초심자일수록 선배들에게 먼저 조언을 구하는 편이 시간도 절약하고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도 줄입니다.
자료 요구는 '자료가 오면 공부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나는 이미 이만큼 알고 있다'는 전문성을 보여주며 시작해야 합니다. 조건·기간·제출 방식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대충 제출했다간 큰일 나겠다’는 인상을 주는 게 좋습니다. 기간 설정도 기계적으로 '최근 5년, 7년'을 고집하지 마세요. 최근 2년 추세만으로 충분한데 굳이 5년·7년치를 기계적으로 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의도를 처음부터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기관이 물타기를 하거나 ‘그런 자료 없다’고 버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부 제보로 특정 공문 사본이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정면 돌파하지 않고 2~3개월 범위의 기간의 공문 제목·발신일만 요구해 제출받은 뒤, 그 정보를 근거로 '핀셋'처럼 정확히 그 공문을 요구하면, 상대는 더 이상 없다고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3단계: 자료는 분석이 핵심
자료가 오면 분석이 핵심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정부 데이터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왜 이런 통계가 나왔는지의 배경, 숫자와 숫자 사이의 빈칸, 그 숫자가 국민의 삶에 의미하는 바를 따져 정치적 언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국민과 언론이 이해할 수 있는 여의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보좌진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4단계: 정답은 없지만 원칙은 있다, 질의서 작성
질의서엔 정답이 없습니다. 의원님별로 스타일이 다릅니다. 다만 공통적으로 간결하고 명확하며 정확해야 합니다. 가장 피해야 할 질의는 왜 묻는지 모르는 질문과, 피감기관장이 “사실과 다릅니다”로 시작하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저는 FSS 구조를 씁니다. Fact(사실)를 먼저 제시하고, Story(의원님의 서사)로 알기 쉽게 풀어, Solution(대안)까지 가는 방식입니다. 방어자 입장에서도 사실만 다그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수긍하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국감 시간은 7분·5분·3분처럼 짧습니다. 질문은 짧고 단호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밤새워 3~4쪽을 써도 결국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국감은 양으로 승부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번외) 질의서, 전날 피감기관에 미리 줄까?
저는 드립니다(의원님 허락 하에서). 뒤통수 치는 질의가 아니라면 기관이 준비해 오는 편이 오히려 좋을 때가 많습니다. 질의는 FSS 구조로 솔루션 제안까지 가야 하는데, 답이 엇나가면 김이 빠지죠. 물론 마지막까지 숨겨야 하는 예외도 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5단계: 성과를 알리는 언론 활용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 성과를 내고 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메일링 리스트로 일괄 배포만 하는 방식은 효율이 낮습니다. 수많은 의원실이 보내는 보도자료를 기자들은 다 읽지 못합니다.
제 경험상 더 효과적인 방법은, 평소 기자의 관심사를 파악해두었다가 ‘이 이슈에 관심 있느냐’고 묻고, 관심이 있으면 사전 설명을 합니다. 가능하면 한 매체에 단독 보도의 기회를 주고, 약속된 시간이 지난 후에 보도자료를 배포해 후속 보도를 유도합니다. 두 매체에 동시에 단독을 약속하면 신뢰가 깨질 수 있으니 피해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건 좋은 아이템과 다른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팩트·데이터가 있을 때 효과가 큽니다.
(번외) 보도자료 쓰는 팁
처음 보도자료 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선배들이 도제식으로 “네가 먼저 써봐라”라고 하는 건 훈련의 기회입니다. 저는 일간지 스트레이트 기사를 하루에 하나씩 모방해 보라고 권합니다. 역피라미드 구조(제목, 핵심 팩트, 부연, 마지막에 의원님 멘트)로 쓰면 바쁜 기자가 바로 기사화하기 좋습니다.
6단계: 국정감사 사후관리
국감 중에는 의원님 발언, 피감기관 답변, 서면질의 시기를 상시 모니터링합니다. 효과가 있었다면 예산·입법으로 즉시 연결합니다. 저는 보통 6월 정도부터 법률 개정안 초안을 준비해 두고, 국감장에서 피감기관장이 긍정적으로 답하면 정기국회 기간에 바로 제출합니다. 국감에서 언론 이슈화와 공감대가 형성되면 2~3개월 안에 법률 개정안이 통과될 수도 있습니다. 국정감사는 끝이 아니라 법·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입니다.
추가적으로 이런 것들을 고려하라
숫자에 대한 당부
정확성과 팩트 기반 분석력이 중요합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이용해 오히려 사람을 속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통계·도표를 볼 때는 숫자 뒤의 비하인드, 숫자 사이의 누락을 고민하고, 국민 삶에서의 의미를 분석해 제도 개선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특히 '퍼센트'와 '퍼센티지 포인트'를 혼동하는 실수 하나가 의원실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엑셀 숙련은 필수입니다. 전문 통계 프로그램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 통계 해석과 검증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보좌진은 숫자 속 진실을 밝혀내는 정치의 번역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꼼꼼함을 강조합니다.
멘탈 관리와 팀워크
시간을 많이 투입한다고 성과가 자동으로 오르진 않습니다. 혼자 생각을 엮고 점검하는 고요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리한 밤샘 대신 본인만의 루틴(국회 분수대 앞에서 눈을 식히고 산책하기, 아침 20~30분 운동, 피곤할 때 쪽잠)이 집중력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합니다. 일의 배분, 농담과 격려, 상호 피드백이 있어야 지속가능한 생산성이 나옵니다. 모두가 금메달과 특종을 할 수는 없지만, 함께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큰 의미이고 결국 성과로 이어집니다.
끝으로 국회에 있는 보좌진에게
국회는 막강한 행정부를 견제해 국민 삶을 개선하는 드문 현장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 큰 자산이 될 겁니다. 국감 땐 국감, 예산 땐 예산만 보지 말고, 당·상임위를 넘어 때로는 협치에도 이바지했으면 합니다. 의원님의 발언과 제도 개선, 질문 하나 뒤에는 보좌진의 보이지 않는 피와 땀이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톱니바퀴이자 국민과 국회를 잇는 가교입니다. 본인들을 국회의원님들의 의정 활동의 소모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번역자이자 설계자라는 자부심으로 힘을 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노고에 대해, 저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를 통해 많은 국감 노하우를 전해주신 신진안 전 보좌관님께 감사드립니다🙇.
텍스트로 담지 못한 더 많은 내용은, 인터뷰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