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dition Future 공동창업자 파올로 마리오니(Paolo Marioni)를 화상으로 만나 스위스·유럽의 의회 보좌진 구조, 협업 방식, 그리고 AI의 가능성을 들었습니다.
한국의 장관 후보 ‘보좌진 사적 업무’ 논란으로 의원–보좌진 관계가 큰 이슈로 떠올랐었는데요, 스위스의 현실은 통념과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를까요.
왜 지금, 왜 스위스인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한 후보자가 과거 보좌진에게 사적 업무를 시켰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국에서는 ‘의원–보좌진 관계’와 ‘보좌진 제도’ 자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 동시에 “유럽 의원은 거의 혼자 일한다”는 통념도 회자된다. 스위스 정치 혁신 랩 Expedition Future의 파올로 마리오니는 스위스의 의회 제도에 대해 '실제 구조는 훨씬 다층적'이라고 말한다.
“스위스는 공식적으로 파트타임 의원제예요. 연 4차례, 약 3주간 의회 회기를 위해 베른(Bern)에 모여 의회 활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지역구에서 본업을 병행합니다. 다만 정책 이슈가 복잡해지면서 정치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흐름이 강해졌습니다.”
스위스 의원이 일하는 법: 파트타임 의원, 파트타임 보좌진
한국의 통념과 달리, 스위스 의원은 완전히 ‘혼자’ 일하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의정활동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오롯이 혼자만 할 수 있는 업무량이 아니다. 스위스 역시 다양한 의정활동 지원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스위스에서 국회의원은 파트타임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풀타임 보좌진(team)을 둘 수는 없습니다. 대신, 의원 개인에게는 업무 대비 30%~50%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건비 예산이 주어집니다. 이 예산을 활용해 직접 보좌 인력을 고용할 수 있어요.”
스위스도 물론 보좌진(assistant로 표현)을 둘 수 있다. 다만 한국보다는 규모가 작다. 주어진 예산으로는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일하는 보좌진 한 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한다. 스위스 의회는 상대적으로 작고 자율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보통 이 인력은 정책 조사 및 문서 준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의원 홍보 및 유권자 소통 업무를 담당하게 됩니다. 두 가지가 주요 역할이에요.”
누가 보좌진을 하는가: 민간 기업, 컨설팅 회사 등 제한 없는 구조
스위스의 보좌진은 의원과 마찬가지로 풀타임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면서 보좌진을 하기도 한다. 누구를 고용할지는 전적으로 의원의 재량에 달렸는데 우리 기준에서 본다면 놀랍기도 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의원들은 자신이 이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 혹은 정치 경험이 있거나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 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고용합니다. 경우에 따라 정당 내에서 인물을 추천받기도 하고, 혹은 민간 기업이나 컨설팅 업계 직원을 채용하기도 해요.”
이해관계자와의 관계: 차단이 아닌 투명성
당연히 드는 의문. 특정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좌진이라니, 심지어 컨설팅 회사 직원도 보좌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의원이 어떤 단체와 연결되어 있고, 또 다른 의원은 다른 단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정치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구조이고, 그 자체가 민주주의 안에서 균형을 맞추는 방식이기도 해요. 이해관계자와의 접촉은 필수입니다. 누가 누구와 연결돼 있는지 공개하는 투명성이 핵심이죠.”
스위스에서도 의원은 기업·시민사회·학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긴밀히 소통한다. 중요한 것은 연결을 끊는 게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다.
“관계를 감추는 게 아니라, 드러내는 것. 누가 누구와 연결돼 있는지 공공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게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극화 시대의 처방: 설계된 협업
Expedition Future가 주력하는 것은 정치의 ‘형식’을 바꾸는 일이다. 대표 포맷은 Policy Sprint와 초선 의원 부트캠프.
Policy Sprint는 서로 다른 정당(우·좌·중)의 소수 의원 그룹을 한 의제에 묶고, 사회·기업·학계 등 외부 전문가 약 30명과 공동입법 워크숍을 연다. 목표는 명확하다.
“내용은 야심차게, 동시에 정치적으로 통과 가능한 해법을 디자인하는 겁니다. 그 스위트 스폿(sweet spot)을 찾는 게 우리의 미션이죠.”
총선 직후엔 초선 의원 부트캠프를 열었다. 전체 246석 중 초선 60명 가운데 20명이 자발적으로 참여, 전 정당이 고르게 섞였다. 스위스 중부의 작은 성에서 24시간 집중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전직 연방장관·국회의장·정당대표·학계 전문가들이 실전 노하우를 공유했다.
“우리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최고의 연사와 동료들이 솔직히 지식을 나누는 장(場)을 큐레이션할 뿐입니다.”
결과는 분명했다. '정치적 상대가 아니라 ‘동료’로 먼저 만나게 하면서, 이후 의정기 전반의 협업 가능성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러한 이들의 노력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전 세계적 트렌드 속에 빛을 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한데,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스위스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정당이나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 간의 거리감이 점점 커지고 있죠.”
“저희가 만드는 포맷은 이러한 분열을 완화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서로의 필요를 듣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정책, 더 야심찬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느림의 역설: 혁신의 기반
스위스 정치는 느리다. 다당 연합 구조 탓에 합의·타협에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마리오니는 그 느림이 동시에 강점이라고 본다.
“다른 나라의 시행착오를 보고 학습할 수 있죠. 견고한 시스템 위에서 새로운 포맷을 과감히 실험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이 소개
Paolo Marioni — Expedition Future 공동설립자. 디지털 혁신·제품개발 출신이다. 스위스의 정치 혁신을 위한 Expediton Future단체를 공동설립했다. 주로 스위스 의회 의원들과 정치 업무의 효율화를 위한 활동을 해왔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유럽정치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외에 Expediton Future가 어떻게 의원들을 모을 수 있었는지, 스위스 의원도 선거를 위한 지역구 관리는 하는지, 그리고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등 더 많은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영상을 통해 인터뷰 전문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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