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늘공'(공채로 시작해서 진급해 정년까지 근무하는 공무원)을 말할 때는 그 대척점으로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선거나 계약직으로 단기간 공무원으로 근무)을 언급하고는 하는데요, 지방의회 정책지원관이 대표적인 어공 중의 하나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늘공이었다가 어공인 정책지원관으로 전환하신 분이 계십니다. 의회에서 어공과 늘공을 모두 경험한 흔치 않은 경험을 나눠주셨습니다.

 


 

공무원 주요 경력:

2018 지방직 9급 임용

2018 ~ 2020 기획예산과 예산팀 근무 (9급)

2020 ~ 2021 일자리정책과 일자리지원팀 근무 (8급)

2022 의회사무과 입법지원팀 근무 (8급)

2023 정책지원관 임용

 

현 직책: 기초의회 정책지원관 근무 중 (7급)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5년간의 늘공 생활을 그만두고 정책지원관으로 일한지 3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지원관입니다.

 

‘왜 공무원을 그만뒀냐’, ‘왜 정책지원관을 하냐’

 

제가 면접을 보거나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수도 없이 듣는 말입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이상하게 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항상 끊임없이 자기증명을 해야 하는 숙제 같은 질문을 얻은 기분입니다. 사회생활용, 면접용 대답이 아니라 그냥 터놓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공무원을 하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ㅎㅎㅎ 공무원이 되고 나서 하기 싫어진 것뿐만 아니라 공무원이 되기 전부터 사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1도 없었습니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으시겠지만 가장 진실한 사실입니다.

 

제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우리 사회는 공무원에 미쳐있던 시기였습니다. 대형 강의실에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도록 수험생이 넘쳐났고 경쟁률은 이미 하늘을 뚫고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저희 나이대 수능 응시자 수가 60만 명 대였는데 공무원 시험 수험생 인구가 30만 명이 넘었었으니 대학 졸업생 절반이 다시 수능 공부를 하듯 노량진 학원으로 다 모이던 시기였습니다.

 

진로탐색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다른 것을 할 용기와 행동력도 없던 저는 남들 다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부모님의 강권에 의해서 공무원 준비를 시작한 케이스였습니다. ‘1년만 해보고 안되면 말아라’ 하는 부모님 말씀에 못 이겨서 학원을 1년 다녔는데 합격해버린 것입니다..(?) 역시 서경석이 “공무원 시험 합격은 에○윌~♬” 이라고 노래를 불렀던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공무원 생활이었습니다.

 

첫 발령지는 기획예산과였습니다. 실무수습(+시보)을 하는 동안은 규제개혁팀에 배치되어 있었고 정식 임용이 되면서 예산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예산팀은 전부 7급 고참 선배들로만 구성되어 있던 팀이라 신규였던 저는 내가 예산업무를 할 수 있을까 부담감을 가득 안은 채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힘들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기라 따로 설명할만한 말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예산팀에 있었던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그때는 하루하루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8급 승진과 함께 일자리정책과로 부서를 옮겼고 공공일자리 사업들을 담당하던 중 의회의 인사권이 독립되면서 저는 의회로 전입 신청을 했습니다. 그렇게 의회 입법지원팀에서 첫 의회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입법지원팀이라고 되어있긴 했지만 거의 의사팀에 가까운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의안접수, 상임위, 자료요구, 현장방문, 시정질문, 의회민원 처리 등 의회가 운영되는 과정의 일들을 다양하게 경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소위 ‘늘공’에서 어떻게 ‘어공’인 지방의회 정책지원관으로 가게 되었는지?

 

2022년 정책지원관 채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저희 의회에도 연구원과 공기업 경력을 가지신 지원관분들이 속속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책지원관이라는 직업은 사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정치론을 강의하시던 교수님께서 굉장히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곧 지방의회에도 보좌인력이 대거 생길 것이다’ 하시면서 조례를 만들어서 발표하는 강의를 진행하셨었고, 방학 때는 인근 지방의회로 현장실습 인턴 프로그램도 추진하셨었습니다. 그때 정책지원관이라는 것이 생길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방학 동안 지방의회를 잠깐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지방의회 정책지원관이라는게 저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왔었습니다. 저는 전공이 정치외교학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국회 보좌진으로 진로를 정한 선후배, 동기들이 꽤 있었고 저도 한때 꿈꾸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미 국정감사 중에 쓰러져서 입원한 후배 병문안을 가고, 선거캠프 활동하는 것도 어깨너머로 몇 번 보고나니 워라밸과 건강을 끔찍이도 생각하는 저에게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진로였습니다.

 

그리고 서울, 여의도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도 그때 당시에는 왠지 모를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보다 서울을 사랑하고 서울이 없으면 못살지만ㅎㅎ 그때는 이미 원거리 통학과 기숙사, 자취를 전전하면서 왜 뭐든지 서울로 꼭 이렇게 고생하며 다녀야 하는 걸까 하는 회의감이 많이 들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지방의회 정책지원관은 내가 원래 사는 지역에서 우리 지역의 일을 의회에서 처리하기 위한 지원을 하는 직무라는 점, 국회와 비교해 낮은 업무강도와 워라밸이 보장된다는 점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정책지원관 제도가 도입되는 지방자치법 개정은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고 나서도 수년이 흘러서야 이루어졌고 저는 그 사이에 이미 늘공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의회에 정책지원관분들이 채용되어서 일하시는 모습을 1년 정도 보고 있자니 나도 저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이 되면서 정책지원관 정수의 나머지 절반을 채용하는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 해가 대규모 채용의 마지막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에 인근 의회에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합격 후 ‘늘공’을 의원면직 하면서 ‘어공’인 정책지원관으로 정말 어쩌다 보니 공무원을 계속 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방의회에서 근무 하는 것은 집행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것과 다를 것 같은데. 어떤 점들이 다르고 또 혹은 비슷한지?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은?

 

👉급여 및 근무 환경

 

먼저, 급여 부분이 가장 차이가 크고 이 점이 많이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ㅎㅎ 제가 늘공으로 5년 근무했을 때 저의 경험 기준으로만 말씀드리면 초임때는 월급 실수령이 160~170만원 정도였었고, 의원면직하기 직전인 8급 7호봉(군대 2년까지 포함)때는 딱 210만원 정도였습니다. 직급보조비, 정액급식비, 대민활동비, 기본 초과근무 10시간 수당까지 다 포함한 금액입니다. 물론 정근수당과 성과상여금을 따로 또 받기 때문에 그 금액들까지 합친 1년 전체 금액을 12개월로 나누어서 생각하면 한달에 한 230~240만원 정도에서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과 비교해 현재 기초의회 7급 임기제 정책지원관의 월급 실수령액은 지원관 분들 모두 알고계시다시피 ㅎ 저의 늘공생활 시절 대비 대략 1.5배 수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근무시간은 공무원 모두 다 똑같이 9 to 6이긴 하지만, 실제로 야근, 워라밸의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의회가 훨씬 업무강도가 낮고 워라밸이 좋은 편이긴 합니다.(물론 의회 바이 의회, 의원 바이 의원, 팀 바이 팀, 업무 바이 업무 등 너무나도 다른 여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의 현재 기준으로 행정사무감사, 예산심의, 결산심사 때 그리고 구정질문 준비할 때 조금? 정도 말고는 야근을 크게 해야될 필요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야근을 할때도 상당 부분 예측 가능한 회기 일정 안에서 야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집행부 생활을 돌이켜보면 일단 야근 자체가 많기도 많고, 거기에 전혀 예측할 수 없게 잦은 형태로 수시로 생긴다는 점 또한 상당히 스트레스로 느껴졌습니다.

 

근무여건은 훨씬 좋으면서 월급은 1.5배로 늘어났으니 사실 개인적 만족도는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월급이 많은 것은 불안한 고용형태에 대한 반대급부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결국 개인의 선택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ㅎ

 

👉업무적 측면

 

업무의 내용적인 차이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비유를 하자면 집행부는 손과 발 같은 역할의 일을 하는 것이고, 의회는 눈과 입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집행부는 실질적이고 실무적으로 잡다하게 해야 될 일들을 계속 쳐내는 형태입니다. 게임으로 치면 쉴새없이 나에게 부여되는 퀘스트들을 그때그때 바로 깨면서 쳐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퀘스트는 단순할 수도 있고 한참을 고생하게 만들고 결국 깨지 못하는 어려운 퀘스트들도 있습니다. 계속 그렇게 던전 속에 던져져 있는 기분입니다.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의회는 그런 것보다는 남이 한 것을 보고 이게 맞게 된건지, 왜 이렇게 한건지, 이렇게 했으면 다른 부작용이나 피해가 없었을지, 다른 더 좋은 방안이 있지 않은지 등을 계속 관찰·분석하고 그것으로 지적·제안을 하는 성격의 일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모든 직업과 회사가 다 그렇겠지만 사람을 상대해야 된다는 점 특히, 수직적 구조에서 윗사람을 상대해야 된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 윗사람이 누구냐에 대한 차이만 있는 것 같습니다.

 


 

🎙️늘공에서 정책지원관으로 가는 것에 대한 생각

 

고용형태나 근무여건 같은 조건의 문제보다도 본인의 성향이 어떤 것에 맞는지가 더 중요하고 늘공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추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책지원관의 업무 성격은 조사·분석하고 말과 글로 그것을 전달할 수 있게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제가 주변 공무원분들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그냥 절차대로 실무, 행정처리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뭘 생각해내고 글 쓰는건 너무 싫다 그런 분들도 많으십니다. 그렇다면 늘공을 그대로 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쳇바퀴 도는 기계같은 업무들과 조직이 너무 답답하고 의미가 없고 숨이 막힌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조사·분석하고 대안을 찾아보고 말과 글을 만들어내는 일이 재밌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면 정책지원관을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제 정책지원관이 되고싶어도 되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생겼습니다. 정책지원관 채용을 막 시작했던 2022년~2023년까지는 채용하는 인원도 많았고, 지원자들의 경력이 광역의회에서 이미 정책지원관 유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던 분들을 제외하고서는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에 대한 업무 경력이 있는 분들 자체가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제가 나이, 경력, 학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었음에도 공무원으로서 예산업무와 의회업무를 해봤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경쟁력이 되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정책지원 인력이 이미 의회에서 업무를 경험한 경력자들이 되셨기 때문에 합격하기 위한 기본 경쟁 자체가 심해졌고 다른 경력, 학위가 있지 않는 이상 일반 늘공분이 지원해서 합격하기는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반 민원, 사업부서 경력만으로는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그래도 법제업무, 의회업무, 예·결산 같은 업무의 경력자라면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지방의회의원, 정책지원관들에게 하고 싶은 말

 

파견으로 정책지원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원면직을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 여전히 이중신분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집행부는 저에게 애증의 대상입니다. 집행부에서 안 좋은 점, 잘못된 점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 더 잘보이고 그것을 지적할 수 있지만, 실무 여건상 어려운 부분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에게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래 잘 아는 사람이 더 진상 민원인이 된다는 말도 있듯이 제가 어떤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맞다는 걸 이미 해봐서 알고 있는데 집행부가 계속 틀리게 하고 있거나 그걸 또 거짓말로 둘러대고 의원님이 잘 모른다고 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면 몇 배는 더 화가 나고 정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처럼 양쪽 모두의 경험을 가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인간적인 이해의 폭은 지금보다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적교류나 친밀감을 쌓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지방자치의 집행부와 의회가 철저히 더 분리되어 장기적으로는 아예 다른 기관으로 인식되어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더라도 기본적으로 ‘아 저기서 저 일을 할 때 저 사람은 저 나름대로 입장이 있었겠구나’, ‘저쪽도 나름의 상황이란게 있겠구나’하는 인간적인 이해의 폭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왜 일을 이렇게 했지? 잘못했네, 왜 이게 안된다고 하지? 이런것도 못하나? 식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의회의 견제·감시 역량 강화에도 진정으로 도움되는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판단해야 그 대안도 수용성과 현실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서로 베일 속에 가려진 적진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나오는 막연한 적대감과 스트레스가 큰 것 같아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인터뷰 해주신 OOO 정책지원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