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좌진을 위한 최초의 뉴스레터이자 정치권 업무의 혁신을 선도하는 <셀럽>의 첫 국회의원 인터뷰입니다.

 

대상은 국회 보좌관 출신이자, 보좌진 사이에서도 굉장히 평판이 좋으신 걸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님입니다.

 


 

🎙️현직 재선 국회의원이자, 전직 보좌진으로서 정치권에 투신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신지?

 

어린 시절부터 구체적인 직업에 대한 꿈은 없었다. 최근 대학생 대상 강연을 가면 이 이야기를 꼭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린 시절에 어렴풋한 장래희망은 있는데 구체적인 꿈이 없지 않냐고. 그래도 막연하게나마 어린 시절에 ‘역사 속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만큼은 존재했다. 역사 속의 중요한 장면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렇게 정치학과를 진학했고 학문적인 정치의 길에 입문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직업에 대한 길을 잘 찾지 못했다. 정치학과이다 보니 학문은 배우지만 현실 정치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에 행정고시를 봐 관료가 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도 선출직에 대한 꿈이 없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고민을 하다 행정대학원 진학 후 대선 자원 봉사, 전당대회 자원 봉사를 하며 현실 정치를 경험하게 됐다. 대학원 재학 중에 국회 보좌진이 되기 위해 계속 국회 채용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국회 공개채용에 6개월 정도 계속 지원했다. 민주당의 거의 모든 의원실에 다 지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의원실에 채용된 이후 그날부터 바로 야근이 시작됐다.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한 이유와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당시 의원실에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대선 상황실장, 원내대표 등 주요 업무를 다루다보니 짧은 시간에 정치의 구조적인 운영 등 다양한 일들을 배워나갔다. 즐거운 기간이었고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보좌진이 되고 나서 현실 정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오히려 막연하게나마 품고 있던 선출직에 대한 꿈이 구체화 됐다. 국회에서 일한 지 10여 년 정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 책임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동기가 생겼다. 내 이름을 달고 일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는 내 나름의 판단이 있었다.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당내에서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있는 30대 청년이 도전에 실패하면 과연 ‘청년 정치라는 게 존재할 수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민주당의 험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서 살아남는 모습을 통해 책임정치가 가능하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30대 보좌진 출신 청년이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조언은 있는지?

 

저도 보좌진으로서 선거를 많이 경험했는데 확실히 내 선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선거를 치루면서 크게 어려웠던 것은 2가지였던 것 같다.

 

첫째, 전문성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의원실에서 보좌진으로 선거를 치루면 선거에 훈련된 동료 보좌진들이 주변에 있어 내가 미진한 부분을 동료들이 채워주며 큰 사고가 날 일이 없다. 근데 내 선거는 내가 보좌진 출신이라 선거를 많이 경험하고 잘 안다고 해도 인력이 없어 대부분의 일을 혼자 처리해야 될 경우가 많다. 첫 출마를 하며 선거 기간 때 선거 업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인력 2명, 제대로 치러본 보좌진 1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둘째, 선거 스텝과 출마자가 내는 용기가 다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스텝은 후보를 자꾸 밀어 넣고 싶고 시키고 싶은 상황이 많다. 하루에도 전화 50통씩 해야 되고, 모르는 곳에 인사를 해야 되는 그런 상황들. 제일 어려웠을 때가 아무도 모르는 30여 명의 모임 자리에 스텝이 밀어 넣었던 적이 있다. 그 모임을 했던 장소가 어제 열렸던 다른 모임의 장소와 같았는데 전날 모임은 아는 사람이 있어 문을 가볍게 열었다면, 그 날은 문이 무겁게 느껴져서 쉽사리 열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일들이 1달, 2달 쌓이다 보면 선수로서 들일 수 있는 정신적인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보좌진 시절에 후보를 밀어 넣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 선거를 치르면서 다른 지평을 보았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선거를 치르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고통과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아무리 보좌진으로서 선거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내가 출마자가 되면 다른 차원이다. 하지만 보좌진들이 고통과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 결심만 있다면,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 선거 경험이 많은만큼 일찌감치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좌진이 일찌감치 선출직에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셨는데 최근 보좌진이나 젊은 세대의 정치 출마에 대한 최근 정치권 분위기는 어떻다고 느끼는지?

 

사실 제가 출마했을 때보다 젊은 사람들, 특히 보좌진들이 출마할 수 있는 환경이 안 좋아진 것 같긴 하다. 제21대 총선 때만 해도 전체적으로 젊은 청년들이 많이 도전하고 정치를 바꿔줘야 된다는 흐름과 분위기가 꽤 많았던 느낌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치가 극단화되고, 계엄 이후에 정치 분위기가 경직되다 보니 현재는 사회 전체적으로 젊고 새로움에 대한 내용과 정책 전문가 이미지를 가지고 도전을 하는 것보다 강력한 투사들을 원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인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최근 정치와 사회의 현안들이 복잡해짐과 동시에 굉장히 디테일하게 변하고 있다. 보좌진 출신들의 강점이 현안에 강하며, 입법‧정책‧제도‧예산의 디테일에 훈련돼 있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까지 3년의 시간이 남았고 정치와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국민들이 정치라는 영역이 초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 훈련 받은 사람들이 해야 된다고 느끼시는 것 같기도 하다. 긴 호흡을 가지고 내실을 준비한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요즘은 국회 선후배 보좌진들에게 조금은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있다. 제가 보좌관 하다 바로 국회의원이 된 케이스이다.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들에게 ‘보좌관 출신이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고 증명하는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겠다.

 

 

🎙️국회의원이 되신 후 3개의 상임위에서 활동하셨는데 상임위 선택의 기준 있는지?

 

21대 환노위와 국토위, 그리고 22대 현재 산자위에 소속되어 있는데, 일단은 개인적인 취향과 흥미가 물론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환노위는 제 로망 같은 느낌으로 선택한 상임위다. 국회 첫 시작을 노동담당 비서관으로 시작했기에 의원이 되어서도 시작을 환노위에서 한다면 좋겠다는 로망이었다. 젊은 의원인만큼 노동영역의 올드한 법과 제도를 바꾸고자 하는 사명감도 있었다.

 

국토위는 지역구 발전을 위해 선택했다. 많은 의원들이 선호하는 상임위다. 개인적으로 의정활동 자체가 즐거웠던 상임위는 아니었지만, 지역발전 측면에서 확실하게 도움 되는 상임위다.

 

지금의 산자위는 개인적인 흥미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산업정책을 다룰 수 있어서다. 타 상임위의 경우 똑같은 내용을 거의 비슷한 버전으로 계속 얘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산자위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기 편한 측면이 있다. 특히 AI 시스템의 내재화나 청년들의 제조업 진출 등에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이러한 차별성이 개인에게도 그리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이 된 후 의원실에서 보좌관 시절과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관계가 공동체이긴 하지만 약간의 거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실무진일 때보다 클리어한 소통을 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의원이 되면서 의원실 식구를 꾸렸지만, 절반 이상이 기존에 알던 보좌진이었다. 그래서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진 않았는데 의원이 되니 가끔은 정보의 소외감이 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제가 중간 관리자인 보좌관 시절에는 거의 모든 업무나 직원들의 역할 등 전체적인 파악이 가능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의원인 지금은 전체 보좌진들의 프로젝트, 역할 배분, 때에 따라서 업무 외적으로 직원의 개인적인 흥미나 꿈 등 이런 부분들에 대한 파악도가 훨씬 떨어진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을 일일이 물어보고 보고 받을 수도 없지 않나.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아주 약간의 섭섭함을 느끼기도 한다.

 

 

🎙️보좌진 출신 국회의원들이 국회와 보좌진들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에 보좌진 입장에서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국회의원이 된 후 보좌진들에게 특별하게 요구했던 사항이 있었는지?

 

제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근무할 때, 그리고 지금 의원일 때도 의원실 식구들에게 딱 한 가지를 요구한다. 국회에서 일을 할 때 ‘절반은 의원이 시키는 일, 그리고 절반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긴밀한 의원과 보좌진 관계라도 완벽한 동기화는 없다. 심지어 가족들도 나의 생각처럼 동기화되는 일이 없는데 오죽하겠나. 그래서 일의 기준점을 의원으로 삼기는 불가능하다. 본인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정책이든, 입법이든, 정치적인 삶이든 뭐가 됐든 간에 스스로 기준점을 무조건 찾아야 의원이랑 생각이 다르면 막말로 한바탕하겠다는 용기도 생긴다. 이런 게 없으면 에너지가 떨어지기도 하고 보좌진 생활 자체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영역에서 일하는 보좌진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것에 대한 욕구, 에너지가 있어야 의원실이나 당,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발전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내가 해야 되는구나.  출마를 해봐야 되는구나’ 같은 결단의 순간이, 옆에서 누군가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보좌진 선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지?

 

우리가 밥만 먹고 살자고 보좌진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가 망가지고 상실되는 부분이 우리 보좌진들에게 정치 속에서 함께 하는 삶이 주는 의미가 충분히 있었나 되묻게 된다.

 

그런데 이번 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당시 보좌진들이 회의장 문 앞에서 스크럼을 짜고 계엄군 진입을 막았던 모습에 정말로 눈물이 나고 감동 받았다.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우리 보좌진들은 일반적인 직업에 플러스 알파가 있는 부류였다.

 

국회 보좌진으로서 일을 하며 그 이상의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저 개인적으로도 자긍심을 느끼도록 노력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평화로운 시간이 온다면 기획도 하고 제안도 하면서 같이 만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선거 출마를 하고 싶은 것이든, 정치활동 영역을 넓혀 가고 싶은 것이든, 개인적인 관심이 있든 크게 상관없다. 당을 떠나서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 저를 만나러 와도 좋다.

 

 

🎙️장철민 국회의원 자기소개: 국회 및 정치권 경력

 

2020년 민주당의 험지 출마를 결심했다. 그 결심은 당과 정치발전을 위해 내가 먼저 험지로 출마해 민주당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아 책임정치를 이루고자 함이었다.

 

그 결과 근 50년 만에 충청에서 가장 젊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는데, 이는 민주당 험지 내의 신선한 변화와 함께 정치를 바꾸라는 유권자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제21대와 제22대 대전동구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며 환경노동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 등에서 활약했다. 대전과 민주당뿐만 아니라 차기 대한민국의 젊은 지도자로서 발판 마련을 꿈꾸고 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장철민 의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